천막에서 시작된 믿음, 안누가 형제님 이야기
대천덕 신부님과 함께 예수원의 첫 돌을 놓은 청년, 그리고 "예수원 1호 커플"로 남은 한 가족의 기록

예수원 초창기. 가죽점퍼 차림의 청년 안누가와 대천덕 신부님. 돌계단 아래 통나무 토막이 받쳐져 있다. (1960년대 중후반 추정)
01 · 만남
화곡동 공사장에서 강원도 황지로
안누가 형제님은 서울 화곡동의 그리스도의교회 신학교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천덕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신부님은 그에게 “젊은이가 필요하다,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른 채 따라나선 길의 끝은 강원도 황지였습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예수원의 첫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신부님을 따라가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동안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건물이 서기 전, 공동체는 천막 한 동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가족들은 “신부님이 아빠를 많이 좋아하셨다”고 기억합니다.
“누가 형제님 잘 기억합니다.
같이 장막 생활 6개월 했습니다.”
01 · 장막
천막 한 동, 열두 사람
벤 토레이 신부님이 그 시절 사진 세 장과 함께 기억을 보내주셨습니다.
“천막은 여러 동이 아니라 한 동뿐이었어요. 열두 명이 그 안에서 여섯 달을 함께 살았습니다.”



벤 신부님은 형제님을 부지런한 일꾼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소를 돌보는 일은 많이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소는 주로 벤 신부님과 사무엘 리(Samuel Lee) 형제님이 맡았습니다. 사무엘 형제님은 전쟁 때 남은 지뢰에 두 팔을 잃고 얼굴에 큰 화상을 입은 분이었습니다.
사진·증언 · 벤 토레이 신부님 (2026년 10월)
02 · 결혼
"예수원 1호 커플"
예수원 건물이 지어진 뒤, 공동체에 먼저 와 있던 세실리아 자매님이 동생을 예수원으로 불렀습니다. 그 동생이 이라헬 자매님입니다.

라헬 자매님은 예수원에서 안누가 형제님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주례는 대천덕 신부님이 맡으셨습니다.
“예수원 1호 커플이에요.”
올해 만 83세인 어머님은 지금도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예수원에서 지냈던 세실리아 큰이모는 2024년경 세상을 떠났습니다.
03 · 목장으로
소와 함께한 평생
예수원을 떠난 뒤에도 형제님의 삶은 소 곁에 있었습니다.
시드니 알렌 선교사님이 형제님을 파주의 KCC목장에 소개했습니다. 또 연세대학교에서 소 인공수정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형제님은 그곳에서 인공수정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 뒤로 2012년 돌아가실 때까지, 형제님은 평생 인공수정사로 일했습니다.

1968년에 태어난 딸 은미 님은 파주 목장 시절 아버지 품에 안겨 사진을 찍었습니다. 목장으로 찾아온 현재인 사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04 · Cows for Korea
알렌 선교사님과 KCC 목장
형제님을 파주 목장으로 이끈 시드니 알렌(Sidney N. Allen) 선교사님은 수의사이자 선교사였고, 최수열 선교사님의 사위였습니다. 최수열 선교사님은 형제님이 대천덕 신부님을 처음 만난 화곡동 그리스도대학교 건설 현장의 설립자입니다.
KCC는 한국기독학원(Korea Christian College)의 약자입니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최수열(L. Haskell Chesshir) 선교사가 1958년에 세웠고, 1963년 학교법인 그리스도의 교회 신학교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지금의 강서대학교입니다. 학교는 김포공항 가는 길목의 등촌리에 있었고, 1966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형제님이 일하던 “화곡동 그리스도의교회 신학교” 건축 현장이 바로 이 학교입니다.
최수열 선교사는 1962~63년 미국 교회들을 돌며 “한국에 젖소 보내기(Cows for Korea)” 운동을 벌였습니다. 1963년 5월 홀스타인 젖소 92마리가 들어왔고, 그해 10월 대학 부속 목장 KCC Farms가 세워졌습니다. 1967년 2월에는 파주군 광탄면 방축리에 4만 6천여 평을 마련해 목장을 옮겼고, 1969년 젖소 20마리가 더 들어왔습니다. 목장의 우유는 가난한 이웃과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결핵 퇴치와 한국 낙농업 발전에도 보탬이 되었습니다.
“KCC 목장 사역은 최수열 선교사의 사위인 시드니 알랜 선교사가 주관했고, 데이비드 굴스비 선교사가 도왔다.”
알렌 선교사님은 1967년 화곡 그리스도의 교회와 화곡유치원을 세우는 일에도 함께했습니다. 화곡동 공사장에서도, 파주 목장에서도 형제님 곁에 알렌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알렌 선교사님은 나이 차이가 있지만 같은 수의사이자 선교사인 바니 스미스(Barney Smith) 선교사님과 친구로 지냈고, 북한 라진·선봉의 바니 선교사님 사역지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KCC 목장
“한국에 젖소를 보내자.” 최수열 선교사님은 1962~63년 미국 교회들을 돌며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1963년 5월, 미국 교인들이 기증한 홀스타인 젖소 92마리가 배에 실려 한국에 왔습니다. 그해 10월 대학 부속 목장 KCC Farms가 문을 열었고, 이 목장은 1967년 파주로 옮겨 사위 알렌 선교사님이 맡았습니다. 안누가 형제님이 일하게 된 곳이 바로 이 목장입니다.





출처 · 「참빛」 406호(2024년 11·12월, 그리스도의 교회) 최수열 선교사 한국선교 70주년 특집 표지, 21~22, 67, 107~108쪽. 알렌 선교사님이 수의사였다는 것은 최수열 선교사 부고(2008, 가족 블로그)에 “사위 Sid Allen, 선교사이자 수의사”로 나옵니다. 형제님이 화곡동 현장에서 일한 정확한 시기와 알렌 선교사님을 만난 경위는 어머님 인터뷰로 확인할 예정입니다.
05 · 다시, 예수원
시온 앞에서 이어진 인연
가족은 예수원을 떠난 뒤에도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갔습니다. 다섯 살 무렵의 은미 님, 머리가 희끗해진 신부님. 사진마다 돌집 “시온”의 같은 돌벽과 돌계단이 배경에 있습니다.



06 · 마지막 만남
한복을 입은 신부님 내외

은미 님이 대천덕 신부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1996년쯤입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부모님, 남편과 함께였습니다. 천막에서 시작된 인연이 30년 가까이 이어진 셈입니다.
07 · 남겨진 것
성경 한 권
은미 님은 대천덕 신부님이 아버지에게 주신 성경책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속표지에는 신부님의 친필이 남아 있습니다.
With earnest and unceasing prayer for Luke.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공사장에서 일하던 청년에게 신부님이 골라준 구절입니다.
07 · 좋은 목자
더 풍성한 생명
신부님이 주신 성경 속에는 카드 한 장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액자에 넣어 간직해 오신 것입니다.

동판 예수상 아래에 형제님의 본명으로 “안상원에게”라는 한글과 요한복음 10장 10절이 영어 손글씨로 적혀 있고, 끝에 현재인 사모님의 서명이 있습니다. 언제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파주 KCC 목장에서, 또 인공수정사로 소를 돌보던 형제님에게 좋은 목자가 되라는 마음으로 골라 보내신 구절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구절은 “나는 선한 목자라”로 이어지는 요한복음 10장, 좋은 목자의 말씀 한가운데 있습니다. 직접 양을 쳤던 필립 켈러는 『A Shepherd Looks at Psalm 23』과 『A Shepherd Looks at the Good Shepherd』에서 양치기의 눈으로 시편 23편과 요한복음 10장의 목자를 풀어 썼습니다. 목자를 따라 문으로 드나드는 양이 꼴을 얻는 것, 그것이 풍성한 삶이라고요.
무무목장이 꿈꾸는 것도 그런 목장입니다. 소들이 푸른 풀밭에 눕고 쉴 만한 물가로 가는 시편 23편의 목장, 그 목장을 돌보는 사람이 좋은 목자를 닮아 가는 곳. 평생 소 곁을 지킨 형제님의 집에 이 구절이 걸려 있었다는 것이 저희에게는 오래된 약속처럼 읽힙니다.
08 · 기록
한 가족의 연표
- 1963
- KCC(한국기독학원) 부속 목장 KCC Farms 설립. "Cows for Korea"로 홀스타인 92두 도입.
- 1960년대 중반
- 화곡동 신학교 건축 현장에서 대천덕 신부님을 만나 황지로 동행. 예수원 첫 건물 건축. 천막 한 동에서 12명이 6개월 공동생활.
- 1966
- 시애틀 성누가교회가 보낸 젖소 두 마리가 예수원에 들어옴. 무무목장의 시작.
- 1967
- KCC 목장, 파주 광탄면 방축리로 이전. 시드니 알렌 선교사 주관.
- 1968년 이전
- 세실리아 자매님의 부름으로 이라헬 자매님이 예수원에 옴. 안누가 형제님과 결혼, "예수원 1호 커플".
- 1968
- 딸 은미 출생.
- 이후
- 알렌 선교사 소개로 KCC 목장에서 일함. 연세대 강의로 인공수정사 자격 취득.
- 1973~74경
- 다섯 살 은미와 예수원 방문.
- 1996경
- 서울에서 대천덕 신부님과 마지막 만남.
- 2012
- 안누가 형제님 별세. 평생 인공수정사로 일함.
- 2024경
- 세실리아 큰이모 별세.
- 2026. 10
- 은미 님이 인스타그램에서 삼수령목장을 보고 연락. 벤 토레이 신부님이 "같이 장막 생활 6개월 했다"고 증언.
무무목장과의 연결 · 형제님이 예수원에 계시던 시기에 첫 젖소가 들어왔습니다. 벤 신부님에 따르면 그 소는 주로 벤 신부님과 사무엘 리 형제님이 돌봤습니다. 평생 이어진 소와의 인연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이라헬 어머님 인터뷰에서 확인할 예정입니다. 연표의 연도 가운데 “경”으로 표시한 것은 추정입니다.
예수원 첫 돌을 놓은 손은 평생 소를 돌본 손이 되었습니다. 60년 전 같은 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 무무목장에 다시 닿았습니다.
에필로그 · 폴 킹스베리
김승배 선교사님과 예수원 목장
킹스베리 프로젝트의 이름이 된 사람, 폴 킹스베리(Paul Kingsbury, 1920~2013) 선교사님입니다.
버몬트 캐번디시의 처브힐 농장에서 자란 그는 1952년 뉴욕에서 대천덕 신부님의 아버지 아처 토레이 주니어를 만났습니다. 전쟁으로 팔다리를 잃은 한국 사람들에게 의수족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아홉 달 과정을 석 달 만에 배워 그해 한국에 왔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의수족 만드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1957년부터 1974년까지는 헤이퍼 농업선교사 ‘김승배’로 염소와 젖소, 돼지와 닭을 전쟁고아와 가난한 농가에 나눴습니다. 1975년부터 1982년까지는 예수원에 머물며 예수원 분수령목장 설립을 이끌었습니다. 외양간을 짓고 낙농 기술을 전했고, 가족과 살던 집 ‘록베리(Rockbury)’는 지금 ‘석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누가 형제님이 천막에서 첫 건물을 짓고 십 년쯤 지나, 목장은 예수원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 목장이 자리를 잡도록 도운 분이 킹스베리 선교사님입니다.


선교사님의 삶은 폴 킹스베리 선교사님 이야기에 따로 실었습니다.
에필로그
받은 것을 흘려보내며
안누가 형제님의 이야기에는 바다를 건너온 젖소 이야기가 함께 흐릅니다.
1963년,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들이 보낸 젖소 92마리가 KCC 목장을 열었습니다. 1966년에는 시애틀 성누가교회가 보낸 젖소 두 마리가 예수원에 들어와 무무목장이 시작됐습니다. 전쟁 뒤 가난했던 이 땅에서 우유는 아이들의 영양과 결핵 퇴치를 위한 선물이었습니다.
미국 교회들이 흘려보낸 그 도움 위에서 대한민국 낙농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그 길에는 안누가 형제님처럼 평생 소 곁을 지킨 사람들의 손이 있었습니다.
이제 무무목장은 받은 것을 다시 흘려보내려 합니다. 한국의 낙농 시스템을 북한으로 흘려보내는 “킹스베리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헤이퍼 사역으로 대한민국 낙농업의 기반을 닦은 폴 킹스베리(김승배) 선교사님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입니다.
60년 전 미국 교회가 한국에 젖소를 보냈듯,
이제는 우리가 북녘에 젖줄을 이을 차례입니다.
에필로그 · 60년이 지나도
형제님이 지은 사료저장고
예수원 숲속에는 지금도 돌로 쌓은 둥근 사일로 하나가 서 있습니다. 안누가 형제님이 지은 사료저장고입니다.

아랫단은 납작한 돌을 켜켜이 쌓았고, 그 위로 둥글게 회벽을 올렸습니다. 소에게 먹일 꼴을 담아 두던 창고입니다. 지붕 함석은 녹슬었고 겨울 담쟁이가 벽을 덮었지만, 돌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천막 한 동에서 여섯 달을 살며 예수원의 첫 건물을 짓던 청년은, 그 산에 소를 위한 창고도 남겼습니다. 형제님은 평생 인공수정사로 소 곁을 지켰습니다. 이 사일로는 그 인연이 예수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표시처럼 보입니다.
60년 전 쌓은 돌이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에필로그 · 다음 세대
같은 산에서 다시 무릎을
예수원 소기도실, 아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경사진 서까래 아래 돌벽을 마주하고 성경을 펼친 네 아이. 천막 한 동에서 열두 명이 드리던 저녁기도가 60년을 건너 이 작은 방까지 이어졌습니다.
안누가 형제님이 첫 돌을 놓고 소를 위해 사일로를 쌓은 그 산에서, 다음 세대가 그 목장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일도 이 기도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형제님이 쌓은 돌 위에서,
다음 세대가 기도합니다.
자료 제공 · 안은미 님 | 정리 · 삼수령 무무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