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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이야기
헤리티지

버몬트에서 태백까지, 폴 킹스베리 선교사님 이야기

의수족을 만들고, 가축을 나누고, 예수원 목장이 자리 잡도록 도운 김승배 선교사님의 30년

삼수령 무무목장·
언덕에서 양 떼를 지켜보는 폴 킹스베리 선교사님

분수령목장 언덕의 폴 킹스베리 선교사님. 양 떼를 지켜보고 있다.

01 · 버몬트

버몬트의 농장 소년

폴 킹스베리(Paul Kingsbury) 선교사님의 한국 이름은 김승배입니다. 1920년 늦가을, 미국 버몬트주 캐번디시의 처브힐 농장(Chubb Hill Farm)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장에서 자란 그는 공부를 오래 했습니다. 호튼 칼리지, 예일대학교 극동언어연구소, 버몬트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코넬대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유럽 전선에 나갔다가 다쳐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시절, 같은 뜻을 품은 바바라 버크홀더(Barbara Burkholder)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1952년 시카고에서 결혼했습니다. 바바라 여사는 훗날 남편의 고향 이야기를 『처브힐 농장과 캐번디시, 버몬트: 가족과 마을의 역사 1876-1960』이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02 · 부르심

뉴욕에서 만난 아처 토레이 주니어

1952년 초, 한국으로 갈 길을 찾던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뉴욕 맨해튼에서 아처 토레이 주니어를 만났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의 아버지입니다.

아처 토레이 주니어는 전쟁으로 팔다리를 잃은 한국 사람들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그 일에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해 여름, 그는 딘 쇼웬거트(Dean Schowengerdt, 서인근) 선교사와 함께 뉴욕의 의수족 공작소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아홉 달 걸리는 과정을 석 달 만에 마쳐야 했습니다. 한 사람은 의족을, 한 사람은 의수 만드는 법을 익혔습니다.

안경을 쓴 젊은 시절 폴 킹스베리 선교사님의 얼굴 사진
김승배 선교사. 사진 · 헤퍼코리아

03 · 1952~1957

전쟁 뒤의 의수족 공작소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1952년, 서른두 살에 전쟁 중인 한국에 왔습니다. 바바라 여사는 이듬해 휴전이 된 뒤에야 들어왔습니다.

1952년 9월부터 ‘한국 절단 장애인 재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처음 일한 곳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였습니다. 그곳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의수족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1957년까지 이 일을 계속했습니다.

아처 토레이 주니어와 맺은 인연은 그 아들 대천덕 신부님에게로 이어졌습니다. 1965년 대천덕 신부님이 강원도 황지에 예수원을 세웠고, 예수원이 소를 키우며 자립을 꾀할 때 킹스베리 선교사님이 힘을 보탰습니다.

04 · 1957~1974

헤이퍼 농업선교사 김승배

1957년부터 1974년까지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헤이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의 농업선교사로 일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를 ‘김승배’라고 불렀습니다.

염소와 젖소, 돼지와 닭을 전쟁고아와 가난한 농가에 나눴습니다. 가축만 건넨 것이 아니라 키우는 법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대전의 기독교연합봉사회(Union Christian Service Center)와 기독교농민학원이 일터였습니다. 헤퍼코리아는 그가 경북 지역에서 가축 종자를 보급하고 농민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고 기록합니다.

기와집 앞에서 농민들과 함께 선 김승배 선교사
농민들을 찾아간 김승배 선교사. 뒷줄 가운데 안경 쓴 이가 김승배 선교사. 사진 · 헤퍼코리아

기독교농민학원에서 그를 만난 이재복 님(1937년생)은 그를 도와 헤퍼 사업에 참여했고, 그 뒤로 목장을 운영하며 평생 낙농에 몸담았습니다. 안동 이재복 님 집 벽에는 지금도 헤퍼 농업선교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소 한 마리를 받은 집이
새끼를 낳으면 이웃에게 그 새끼를 건넵니다.

헤이퍼의 이 원칙(Passing on the Gift)은 무무목장이 지금 붙들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05 · 1975~1982

예수원 목장으로

1975년,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강원도 태백 예수원으로 왔습니다. 보스턴에 사는 에릭슨 부부의 후원으로 오게 된 길이었습니다.

그 무렵 예수원 목장은 예수원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그 목장이 자리를 잡도록 도왔습니다. 외양간을 짓고, 20년 가까이 쌓은 낙농 기술을 공동체에 전했습니다. 그 목장이 예수원 분수령목장(Jesus Abbey the Watershed Grange)이고, 지금의 삼수령 무무목장입니다.

언덕에서 양 떼와 개를 지켜보는 킹스베리 선교사님
분수령목장의 킹스베리 선교사님. 언덕에서 양 떼와 개를 지켜보고 있다.

예수원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은 ‘록베리(Rockbury)’라고 불렀습니다. 그 집은 지금 ‘석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수원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천덕 신부님과 킹스베리 선교사님
대천덕 신부님과 킹스베리 선교사님. 예수원에서. 모자 쓴 이가 킹스베리 선교사님.

06 · 귀향

처브힐 농장으로 돌아가다

바바라 여사는 한국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네 딸도 한국에서 키웠습니다.

1982년, 한국에서 30년을 보낸 부부는 처브힐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 캐번디시에서는 캐번디시 역사학회와 지역 교회 일을 맡았습니다. 바바라 여사의 책도 이 역사학회에서 나왔습니다.

말년에 킹스베리 선교사님은 알츠하이머를 앓았습니다. 2013년, 92세에 가족 곁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07 · 기록

연표

1920
버몬트주 캐번디시의 처브힐 농장에서 폴 알프레드 킹스베리 출생.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 참전. 부상으로 퍼플하트 훈장.
1952 초
뉴욕 맨해튼에서 아처 토레이 주니어를 만남. 딘 쇼웬거트 선교사와 함께 의수족 제작을 석 달 만에 배움.
1952
시카고에서 바바라 버크홀더와 결혼. 9월부터 '한국 절단 장애인 재활 프로젝트'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수족 제작을 가르침.
1953
휴전 뒤 바바라 여사 한국 도착.
1957~1974
헤이퍼 농업선교사 '김승배'.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와 기독교농민학원을 거점으로 가축 보급과 농민 교육.
1965
대천덕 신부님, 강원도 황지에 예수원 설립.
1975~1982
예수원에 머물며 예수원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 간 목장이 자리 잡도록 도움. 가족과 '록베리'(지금의 석성)에서 생활.
1982
한국 생활 30년을 마치고 처브힐 농장으로 돌아감.
2013
92세로 별세.

자료 · 킹스베리 선교사님 가족 기록과 헤퍼코리아 「헤퍼와 한국의 인연 2편: 6·25전쟁 이후 헤퍼의 한국 활동」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에필로그

킹스베리 프로젝트

무무목장은 받은 것을 다시 흘려보내려 합니다.

1963년 미국 교회들이 보낸 젖소 92마리, 1966년 시애틀에서 예수원으로 온 젖소 두 마리, 그리고 킹스베리 선교사님 같은 농업선교사들이 나눈 가축과 기술. 그 도움 위에서 대한민국 낙농이 자랐습니다.

무무목장은 한국의 낙농 시스템을 북한으로 흘려보내는 일을 “킹스베리 프로젝트”라고 부릅니다. 선교사님이 자리 잡도록 도운 바로 그 목장에서 시작합니다.

받은 선물을 다음 사람에게.

예수원의 첫 건물을 지은 청년 이야기는 안누가 형제님 이야기에 있습니다.

사진 · 킹스베리 선교사님 가족, 헤퍼코리아 | 정리 · 삼수령 무무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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